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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로카이의 칼라우파파에는 가슴 아픈 사연과 헌신적인 봉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1800년대 후반 하와이에 한센병이 만연했습니다. 질병에 대한 이해 부족과 그 밖의 요인으로 인해 환자들은 강제로 외딴 칼라우파파 반도로 추방되었습니다. 20세기에 걸쳐 많은 교회 목사와 카톨릭 신부 및 모르몬교 장로를 비롯해 환자의 가족과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몰로카이 섬에 와서 봉사했습니다. 이들의 노력으로 고립된 죽음의 장소가 서서히 치유의 안식처로 변모했습니다. 헌신적으로 노력한 많은 봉사자 가운데 성 다미엔 신부와 성 마리안느 코프 수녀는 환자들의 사랑을 받은 수호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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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코프는 일찍이 종교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바바라는 1838년 1월 23일 서독 헤센에서 태어났으며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와서 귀화 시민이 되었습니다. 24 살 때 뉴욕주 시러큐스에 있는 성 프란체스코 수녀회에 들어가 마리안느 수녀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마리안느 수녀는 행정 관리에 소질이 있었습니다. 뉴욕의 여러 병원 설립에 참여했으며, 시러큐스의 세인트 요셉 병원에서 관리자로 일했습니다. 게다가 친절하고 지혜롭고 견실한 성품까지 지녀 환자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옹호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를 하와이 의학사의 개척자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요인은 이러한 능력과 자질 때문이었습니다.

1883년에 마리안느와 프란체스코회 수녀들은 하와이로 건너와 한센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보살폈습니다. 태평양의 이 외딴 지역에서도 마리안느 수녀의 재능은 높이 인정받았습니다. 도착한 지 일년 만에 마우이 최초의 종합병원인 말루라니 병원을 설립했습니다. 그녀는 카카아코(오아후 호놀룰루 인근 지역)에 있는 분원을 관리했으며, 한센병 부모 때문에 살 곳이 없어진 소녀들을 위해 카피올라니 보육원을 건립했습니다. 빼어나게 아름답지만 안쓰러울 정도로 외진 몰로카이 북쪽의 칼라우파파 반도로 한센병 부모들이 추방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미엔 신부는 16년 동안이나 칼라우파파에서 환자들을 돌보다가 1889년에 자신도 한센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신부는 임종을 몇 개월 앞두고 마리안느와 프란체스코회 수녀들에게 찾아와 환자들을 보살피며 자신의 일생의 과업을 이어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수녀들은 뉴욕으로 돌아가리라는 기대를 접고 신부를 따라 오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마리안느 수녀는 신부의 유지를 받들어 소년 보육원을 계속 운영했으며 아울러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비숍 보육원도 설립했습니다. 1918년에 80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친 수녀는 죽음의 땅을 희망의 안식처로 바꾸는 데 이바지했습니다. 유해는 비숍 보육원의 묘지에 안장되었다가 2005년에 뉴욕의 시러큐스로 돌아갔습니다. 마리안느 수녀는 2012년 10월 21일, 시성식을 통해 성자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마리안느 수녀를 기리는 동상이 호놀룰루 케왈로 베이슨 파크에서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당당히 서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