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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후 역사

오아후의 역사를 살펴보면 하와이 왕국부터 진주만 공습에 이르기까지 하와이 전체에 영향을 미친 주요 사건들을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1795년에 카메하메하 1세는 군대를 이끌고 경치 좋은 누우아누 팔리 전망대의 가파른 절벽 부근에서 전설적인 누우아누 팔리 전투를 벌였습니다. 처절했던 전투의 결과로 오아후는 정복되었고, 마침내 1810년에 하와이 군도가 통일되었습니다.

카메하메하 대왕 이후에 일곱 명의 하와이 군주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카메하메하 3세(카우이케아오울리)는 오아후에 하와이 왕국을 수립했습니다. 카메하메하 4세(알렉산더 리홀리호)와 엠마 왕비의 여름 휴양지였던 퀸 엠마 여름 궁전호놀룰루의 누우아누 밸리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 지금도 방문할 수 있습니다. 메리 모나크(즐거운 군주)로도 알려진 칼라카우아 왕은 다운타운 호놀룰루에 웅장한 이올라니 궁전을 지었습니다.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은 미국 식민지 개척자들이 1893년에 논란이 많은 정변을 일으켜 하와이 왕조를 무너뜨리고 난 후 하와이를 통치한 마지막 군주였습니다. 1898년에 하와이는 미국의 영토로 흡수되었습니다.

1800년대는 하와이의 격변기였습니다. 카메하메하 2세(리홀리호)가 전통 카푸(금기) 제도를 종식시킨 후부터 기독교 선교사들의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하와이 왕과 알리이(왕족)의 예배당이었던 호놀룰루 시내의 카와이아하오 교회를 비롯해 오아호에 있는 유서 깊은 많은 교회는 당시 기독교의 영향력을 일깨워 줍니다. 곧이어 고래잡이, 설탕, 파인애플 등 새로운 산업이 등장했고, 이는 서양 이주자들을 유입시키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19세기 말부터 농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플랜테이션 소유주들은 노동자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중국, 한국, 푸에르토리코, 포르투갈, 러시아, 필리핀에서 온 이주민들이 플랜테이션에서 일을 하게 되었지요. 이처럼 이민자들의 다양한 인종이 섞인 덕분에 오늘날 하와이가 다문화 환경을 이루게 된 셈입니다. 와이파후 플랜테이션 빌리지에 가면 과거로 돌아가 그 당시 시대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유서 깊은 할레이와 타운으로 드라이브를 하다보면 옛 와이알루아 설탕공자의 굴뚝을 볼 수 있답니다.

1900년대 초에 이르러 농경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대신에 하와이 관광산업이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901년 와이키키 해변에 모아나 호텔이 문을 열었습니다. 현재 웨스틴 모아나 서프라이더가 하와이에서 제일 오래된 리조트로 여전히 성업 중입니다. 할레쿨라니 호텔은 1917년에 휴양지로 문을 열었다가 1970년대에 들어 고급 호텔로 재건축되었습니다. 알로하 타워는 1926년에 개장한 이래 40년 동안 하와이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1927년에는 “핑크 궁전”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로얄 하와이 호텔이 문을 열었습니다.

1941년 12월 7일 아침, 일본 해군이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미국을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공습의 주목표는 미해군의 태평양 함대와 육군항공 방어부대, 그리고 해병대 항공부대였습니다. 공습으로 인해 미군함 12척과 항공기 188대가 파괴되고, 미군 2,403명과 민간인 68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1959년 하와이는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되었습니다. 1969년에 완공된 하와이 주청사는 다운타운 호놀룰루의 이올라니 궁전 뒤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와이에서 제일 큰 비숍 박물관에서부터 진주만 사적지에 이르기까지 하와이의 화려한 과거를 보여주는 수많은 명물과 명소가 오아후에 모여 있답니다.